게임이야기/신장의야망시리즈

신장의야망_센코쿠시대_오다노부나가(직전신장)① 오케하자마 전투

넥벤져스1984 2024. 8. 22.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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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에이의 대표적인 시리즈 게임이 있다.

물론 중국의 후한 말기 혼란의 시대를 다룬 삼국지와

일본의 전국시대_센코쿠시대를 다룬 신장의 야망 시리즈이다.

신장의 야망 시리즈는 직전가의 감독 신장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일본 역사 게임이며,

한국에서는 초반에 삼국지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던 이유가

임진왜란의 주범인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등장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국시대의 3명의 주인공 직전신장(오다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이야기를 다룬 신장의 야망을 알아보기 전에

센코쿠 시대의 주요 다이묘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1560년대 일본의 주요 세력

 

1560년대에 5번이 이 게임의 주인공 오다노부나가의 세력도이다.

1560년대의 오다 가문은 오와리의 통치 가문으로

전국시대에서 큰 다이묘 세력이 아니었다.

오른쪽에 미카와부터 토토미, 스루가까지 통치하고 있던 이미가와 가문에 비해 모든 면이 부족했고

1번 세력인 타게다 가문 (시나노, 가이),

그 위쪽의 상삼가문(우에스키)의 에치고에 비해서도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오다 노부나가는 아버지인 오다 노부히데의 급사로 인하여

1551년 오다가문의 통치자로 올라선다.

하지만 가신들의 신임을 받던 동생 오다 노부유키의 반란이 있었으나,

대항세력들을 제압하고 오와리의 영주로 올라선다.

 

하지만 오다 노부나가에게 가장 큰 위기가 닥쳤는데

3국의 통치자인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수도 교토에 상경하기 위해서 오와리로 침공한다.

당시 오다 노부나가는 오와리 1국의 통치자에 불과했다.

오케하자마 전투 이전의 병력 상황

 

일본 측 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 양진영의 영토크기, 병력차이는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이미가와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영주였고, 당시 오다 노부나가는 오와리의 지역 영주였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물리치는 오다 노부나가

 

오케하자마 전투 이전에 이미가와 가문은

동쪽의 호조가문과, 북쪽의 타게다 가문과 동맹을 맺어 후방의 위협이 없었고

서쪽으로 진출하여 수도 교토에 접근하기 위해 오와리를 침공한다.

하지만 오다노부나가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고

단순히 기습을 통해 본진을 습격하여, 이마가와를 무찌른 것이 아니라

사전 첩보전, 내부 배신자 등의 술수를 통해 이마가와 군의 작전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고

이마가와 군을 분산시킴을 통해 이마가와의 본진을 습격한 전투였다.

 

오케하자마 전투의 마지막 병력 배치

 

이마가와 가문의 병력배치와, 정보전에서 승리하 전투이며,

압도적인 병력차이로 인한 이마가와의 방심이 합쳐 저 승리한 전투이다.

물론 역사적 평가는 오다 노부나가의 무모한 승부수와, 기상(악천후), 이마가와의 방심이 

맞물려 우연한 승리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승부할 때 승부수를 던질 수 있는 영웅은 손에 꼽히는 것 같다.

신장의 야망 7번째 시리즈 장성록에서의 이마가와 요시모토

 

하지만 해당 전투로 인하여 이마가와 가문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미카와, 토토미, 스루가를 통치하여 당시 기준 70만 석의 영지의 세력이었다.

하지만 미카와 지역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독립하고,

오다 노부나가와 동맹을 체결(기요스 동맹)하여, 세력이 약화되었고

후에 타게다 신겐에서 공격을 받고 스루가를 잃고, 도쿠가와에서 토토미를 빼앗기며 멸망한다.

 

이마가와라는 전국구 다이묘를 상대로 승부수를 던진 오다 노부나가는

전국에 본인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는 전투였고

도쿠가와라는 미카와 세력과의 동맹을 맺음을 통해

후방의 위협을 제거하고, 미노로 진출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되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초상화로 알려진 모습 / 현대시대 기준 미남은 아닌듯 / 우측사진은 오와리시대의 거점 기요스 성
아즈치 역과 기요스 성터(기요스 공원)에 있는 오다 노부나가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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