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
헌신에 대한 성경을 믿는 사람들의 해석은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죄를 사하여 주셨고, 은혜와 능력을 주셨으며, 평강과 복을 주셨으니, 우리들의 모든 것들도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에게 구원과 더 많은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신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에게 축복과 영광으로 돌아온다고 믿는 것입니다, 헌신은 결국 “사람들을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에게 가장 많이 영향을 줬다고 알려진 19세기 대설교자 "드와이트 무디" 목사님의 좌우명이 바로 “헌신하라, 그리고 또 헌신하라,”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헌신은 하나님을 믿게 하는 전도의 뜻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신앙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면 단순하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신앙적 열의와 세속적 욕구가 한 영혼 속에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가족과 사회와 국가에 헌신만 하기에는 많은 유혹이 있고, 욕심도 있으며 야망도 있습니다,
보통 정치인들은 야망을 먼저 달성해야 헌신을 할 수 있다고 합리화하기도 하지만, 야망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사람들의 헌신을 강요해야 하는 점을 가볍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정치를 하는 사람들만이 국가나 사회에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인 문제와는 관계없이 일상에서 헌신을 실천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섬길 줄 알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헌신적인 삶을 사는 자세이고, 헌신을 실천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신앙적인 헌신을 존중하지만, 세속적인 삶에서도 이웃들을 배려하는 것이 헌신의 정신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과 세속적 헌신은 그 행동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그 목표와 성취는 다를 것입니다, 당연히 신앙적인 헌신은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이 목표이고, 그 성취도 영적인 완성이지만, 세속적 헌신은 지향하는 목표가 인간이고, 정서적 성취인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눈물은 약함의 표현이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한 눈물은 강한 의지이고, 헌신일 것입니다.

이렇게 헌신의 정신을 가진 인생이 값진 것입니다, "켄터키" 산골에서 "링컨"이 태어나던 순간 미국의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흑인들의 운명도 바뀌었습니다, "성 어거스틴"이 방탕해서 돌아오는 순간, 유럽이 변화되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고 행동하였을 때에 기독교의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존 웨슬리"가 은혜를 받았을 때에 영국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주 안에서 거듭나서 헌신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이 세상을 변화시꼈던 역사적인 사람들과 같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의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묵상_20250701_나에게 소중한 사람 (7) | 2025.07.01 |
---|---|
오늘의묵상_20250630_사람은 (4) | 2025.06.30 |
오늘의묵상_20250628_작은 선행의 결과 (12) | 2025.06.28 |
오늘의묵상_20250627_용서하는 삶을 살자 (6) | 2025.06.27 |
오늘의묵상_20250626_믿음으로 사는 존재 (10) | 2025.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