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_임진왜란 일본의 점령지, 수군의 방어
① 평양성 함락 6월 8일 임진왜란 발발 후 약 40일이 지난 시점에서제1 군인 고니시 유키나가는 평안남도 대동강변에 도착했다.1, 2, 3군에 제비를 뽑고, 1군은 선조를 추격, 2 군인 가토는 함경도 진출3군은 나뉘어져 시마지는 강원도로, 오토모는 황해도를 점렴중이었고3군 사령관인 구로다나가마사는 1군과 함께했다.1군과 3군은 평양성 진출까지 큰 전투 손실은 없었지만,부산진성, 동래성, 상주, 탄금대, 한양, 개성에서 전투를 치렀고이때 어느 정도 비전투 손실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평양성 전투에서는 윤두수, 유성룡, 김명원, 이원익 등이 평양을 지키려 했다.대동강은 임진강보다 더 큰 지류이며, 평양성 역시 당시 조선의 2번째 도성으로평양 사수를 위하여, 평안도에 있는 수령들은 병력을 보냈다.또한 ..
2024. 10. 17.
역사이야기_임진왜란 초기 일본군 공세
① 도요토미 히데요시 초기 조선, 명나라 침략 전략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명나라 침략전략의 문제점을 알아보면 첫째, 일본군은 한양에 진격하여, 조선국왕으로부터 항복을 받으려고 했다.일본의 경우에 영주를 사로잡으면 전투가 종료되기 때문에본인들의 사고 방식으로 조선의 왕을 사로잡고, 조선군이 복종하면,주민들이 일본군에게 복종하고, 충성을 맹약할 줄 알고, 한양 공략에 약 5만 명을 동원했다.하지만 조선의 임금 선조는 백성을 두고 몽진을 떠났으며, 조선 백성들은 자신들을 두고 떠난 임금을 버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항쟁을 진행했다. 그래서 두번째 문제는 히데요시는 한양 점령 이후 점령군을 나눠 8도를 점령하려 했다.조선 8도를 점령하여, 병력과 병량을 충원하여 평양성에 집결하여조선을 넘어 명나라로 침략하려고..
2024. 10.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