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이야기/세계사

역사이야기_대항해시대3 이전의 세계탐험 ② 실크로드, 향신료

by 넥벤져스1984 2024. 9. 20.
반응형
SMALL

서기 751년 동서양의 교류를 진행 중이던 실크로드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동서양 문화의 실크로드의 지배세력이 이슬람 세계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이슬람 세력이 실크로드를 장악하기에 앞서서, 동서양 문명의 충돌이 발생했다.

그 계기가 바로 당나라 안서절도사였던, 고구려의 후손 고선지의 서역 진출이었다.

당나라는 실크로드의 유지를 위해 해당 서역거점들을 장악했고,

탈라스 전투에서 패배함을 통해 실크로드의 장악하는 국가가 당에서 아바스조로 변경되었다.

기원후 751년 전세계 지도 / 한국은 신라, 발해의 남북조시대

 

이슬람 세력이 육로를 통한 동서양의 교류를 어렵게 만들자

서양의 기독교 국가들은 동양과의 무역을 위해서 바다를 통한 탐험을 시작한다.

그런데 왜 서양에서는 동양에 왜 가려고 했을까?

그 이유는 부를 창출하려는 고위층의 끝없는 욕망이었다.

실크로드를 통해 동양문물을 접했던 이들은 계속해서

인도의 후추와, 중국이 비단, 찯, 페르시아의 융단을 원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물들은 이슬람 상인을 통해서 공급되고, 세금을 요구하는 이슬람 세력 국가에 의해

가격이 폭등했고, 양도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가격이 비싼 만큼 수요도 줄었기 때문에

 

그렇게 때문에 많은 이들은 동양의 향신료 등을 찾기 위해

육로가 아닌 바다를 개척하고자 했다.

물론 1324년 마르코폴로의 동방 견문록과 / 그 이전 몽고의 서양 침략으로 인해

서양인들의 세계관이 많은 변화가 생긴것도 한몫을 했다.

징기스칸제국의 최전성기 영토

 

칭기즈칸의 최대 영토는 중국의 전 지역과, 중앙아시아, 아랍지역까지 아우르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이었다.

몽골제국을 통해 동서양의 교류는 다시 시작되었으며, 

이를 통해 마르코폴로가 동방에 방문하며, 해당 내용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

단일세력에 의해서 동서양의 연결고리가 생기게 된점이

대항해시대를 개척하게 되는 큰 전환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알 이드리시의 지도 / 1154년 작성

 

1154년 유럽에서 바라보는 동양은 지금의 지형보다 가깝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해당 지도에는 흑해, 카스피해가 다 묘사되어 있고, 

카스파해를 지나면 중국과 인도가 보인다.

해당 지도에는 신라라는 표기도 있는데 해당시기 한반도 국가는 고려였기 때문에

정확하게 모든 국가를 표기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당시 육로로만 이동하며 작성한 

지도로 한정할 때는 꾀나 정확한 지도로 묘사되고 있다.

 

다시 15세기 유럽으로 돌아와 생각해 보면

당시 유럽에서 동양의 주된 교역품에 빠지지 않는 것이 향신료이다.

그 시절 유럽의 음식은 굉장히 맛이 없었기 때문에 향신료가 정말 귀했다.

그런데 왜 유럽에서는 향신료가 귀하게 취급을 받았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동양과 달리 고기를 많이 취식한 유럽인들은 소금에 절인 고기밖에 얻을 수 없었다.

17세기까지도 영국포함 유럽은 북쪽에서는 겨울 동안 가축을 먹일 사료가

충분하지 못해서 가축들이 겨울에 나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늦가을이 되면 가축을 잡아 그 고기를 소금에 절여두고

겨울동안 그 고기는 고약한 냄새를 내기 일쑤였다.

물론 지금은 에이징을 해서 고기에 풍미를 더하기도 하지만

냉장 시설이 없는 중세 시대에서는 해당 고기를 절이는 것 외에 보관할 수 없었다.

중세유럽은 고기를 절이거나, 말려서 보관했다.

 

겨울철 가축을 사육할 식재가 부족한 당시에는

늦가을이 되면 가축을 잡아 고기를 소금에 절여 두었고,

해당 고기는 고약한 냄새를 내기 일쑤였다.

매일 똑같은 고약한 냄새의 고기를 먹는 유럽인들은 질릴 때로 질려 버렸고

해당 고게에 후추와 정향 같은 독특한 맛이 나는 향신료들은

정말 신세계의 상품이었다고 한다.

당시 상류층은 먹고 노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해당 물건은 정말 귀한 물건이었다.

지금은 한낱 조미료에 지나지 않는 물건이

너무나도 앞다투어 세계 탐험을 떠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대표적인 향신료인 강황뿌리와 / 정향, 정향을 고기에 꽂아 놓은 모습

 

15세기 유럽에서 향신료는 동일 무게의 금보다 더 비쌌다고 한다.

다만 동양에서는 그 값어치가, 유럽에서보다 비할 것이 못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동양에 가서 향신료만 가져올 수 있다면

지금의 로또보다 더한 부를 축척 할 수 있었기에,

대부분의 왕실에서 항해사들에게 투자하여, 신항로 개척을 시작한 것이다.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