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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세계사

역사이야기_대항해시대의 시작 ① 희망봉(폭풍의 곶)

by 넥벤져스1984 2024.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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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1년 포르투갈의 왕이 주앙 2세가 되면서

엔리케 왕자의 뜻을 이어 해바다 탐험대를 바다로 보냈다.

포르투갈 아비스왕조의 주앙 2세

 

기독교를 전파하려고 노력하던 포르투갈은 가톨릭 수도사인

프레스터 존 왕이 현재의 에디오피아에 해당하는

아비시니아로 옮겨왔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고,

프레스터존과 손을 잡아 기독교 전파를 하고자 했다.

프레스터 존의 전설인 국왕과, 당시 추정하는 영토 / 아프리카 지도가 많이 외괵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프레스터 존을 찾기 위해 포르투갈에서는 두 갈래로 탐험대를 보냈는데

육지로는 쿠빌라웅이라느 사람이 바다로는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탐험을 맡았다.

 

포르투갈의 항해사 바르톨로뮤 디아스

 

1487년 8월에 리스본을 출항한 바르톨로뮤 디아스의 임무는

아프리카를 돌아서 인도로 갈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프레스토 존을 만나 동맹을 맺는 것이었다.

항해를 하던 디아스는 베르데 곶을 지나,

나중에 황금해안, 상아해안 등 약탈의 해안으로 불리게 될 기니만을 지났다.

하지만 항해중 강력한 폭풍 으를 만나게 되었고.

13일 정도 바다에서 헤메다가 육지를 발견하고 닻을 내렸는데

그곳이 현재의 포트 엘리자베스 부근이라고 한다.

포트 엘리자베스를 발견한 바르톨로뮤 디아스의 함대 (카라벨 2척과, 보급선 1척 총 3척으로 구성되었다)

 

아프리카의 남단이 바다이고, 동쪽으로 계속해서 바다로 이어져 있는 것을

알고 동쪽으로 계속해서 항해를 하려고 했지만

폭풍우로 지쳐있었고, 바다의 대한 두려움이 강했던 선원들은

바르톨로뮤 디아스의 통제를 벗어나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포르투갈로 복귀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프리카 남단의 삐쭉 튀어나온 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은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서로 부딪히는 곳이어서 물살이 매우 사나워, 디아스는 이곳을

폭풍의 곶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희망봉은 대서양과, 인도양의 경계선으로 물살이 거칠고, 생각보다 넓은 곳은 아니다.

 

희망봉은 아프리카의 최남단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폭풍의 곶이라고 먼저 불리던 곳은

추후에 희망봉이라고 불리우게 된다.

혹자는 유럽인들의 인도항로에 대한 희망을 심어줬기 때문에 변경되었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이곳의 최초의 이름은 폭풍의 곶이었고

디아스가 리스본으로 돌아온 후에 주앙 2세가 선원들의 지친 몸과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서

이름을 희망봉이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바스쿠 다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에

항해에 대한 조언을 했고 선박 건조도 감독하지만

1500년 페드로 카브랄의 함대에 소속되어 인도 2차 항로 개척에 탐험을 진행하나

풍랑을 만나 실종된다.

희망봉을 발견을 했지만, 그곳은 물살이 사납고 아프리카 서해안은 당시의 함선으로는

목숨을 걸고 항해해야 하는 곳이었다.

 

프레스터 존이라는 다소 터무니없는 국가를 발견하기 위해 출항했다는 것은 명분으로 보이고

포르투갈의 항해에 대한 목적은 인도를 발견하여, 후추 등을 발견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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