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은 1592년 조선이 건국된 지 약 200년 뒤에 시작된
조선과 일본 간의 전쟁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에서의 당시 동아시아에 상황에 대한 평가는 조선과 명에는 박하고
일본에는 굉장히 후하게 평가되고 있다.
물론 명은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강국이었고, 군대만 약했을 뿐
경제적으로는 세계에서 부족하지 않은 국가였고,
조선도 세계적으로 약한 국가는 아니었지만, 주변국인 일본, 명이 강국이었다.
선조(3)와 광해군(7)의 능력치는 낮다.
그런데 세계적 정복군주 티무르가 (18로 가장 높다),
당시 일본이 전국시대임을 감안하더라도, 도쿠가와(16), 모가미요시아키 (16), 난부 (12)
도요토미히데요시(16), 마에다토시이에(14), 타 테마사무네 (14)....
해당게임에서 조선 최고의 군주인 세종이 (16)으로 되어 있지만
일본에는 한지역 다이묘가 해당 능력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일본의 당시 인물이 많았다고도 볼 수 있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를 조금 찾아본 사람이라면 위의 일본 다이묘들을
들어본 적이 있는 유력 다이묘라고 생각할 것 같다.
일본은 조선 침략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통일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국 다이묘들은 본인의 세력과 군대를 가지고 있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가문들을 간접적으로 통치함을 통해서 조선 출병을 진행했다.
하지안 조선에 근접한 (시마즈, 모리, 가토, 고니시가문) 다이묘들이 출전했을 뿐
동쪽에 있는 도쿠가와를 비롯한 가문들은 참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전국시대를 약 100년간 지내면서
굉장히 많은 전쟁을 치렀고,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이 가도정명이라는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일본이 내세운 명분이 가도정명이지만, 실제로는 조선 침략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침략을 진행한 원인이 필자의 생각으로는 두 개 정도라고 생각된다.
1. 진짜로 명을 정벌하려고 했다.
당시 명나라는 만력제의 재위 시기였는데 만력제이 방만한 행정으로
명나라는 지방부터 무너져 가고 있었고, 실제로 왜구들이 명나라에 약탈을 진행하면
명나라 군대들은 왜구들에게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서 일본 정규군이 상륙하면 명나라를 점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2. 다이묘들의 봉지 문제 해결(친 도요토미 가문)
일본 간토지방 호조가문을 정벌한 이후에 더 이상 정벌 가능한 땅은 일본에 없었고,
기존 영주들을 제외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따르는 다이묘들에게
분봉할 영지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규슈의 시마즈 가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끝까지 저항했던 가문이고,
그지역의 영향력이 막강하기도 했고, 당주를 내리면서 항복을 표현해 멸문을 시킬 수 없었고,
서쪽에 큰 세력인 모리가문은 혼노지의 변 이후 동맹을 맺은 세력
동쪽의 도쿠가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도 위협적인 존재로
기존 영지에서 간토지방 (현 일본수도 동경 - 당시에는 발전되지 않은 넓은 평야지역)으로
이동시킨 터라 더 이상 확장 할 곳이 없었다.
그리고 도쿠가와집단은 도요토미에게 군사적 패배가 아닌 외교적 패배로 합류한 세력으로
도요토미가 무력으로 진압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은 침공하게 된 것 같다.
일본은 수군포함하여 각 지역별 다이묘를 규합하여 약 17만의 병사를 파견한다. (임진왜란)
해당 공격 시에도 통일된 국가가 아니라는 것이
각 다이묘들은 본인 휘하의 병력을 이끌고 참여한다.
만 명 이상의 병력으로 참가한 다이묘는 많지는 않은데
가토 기요마사, 나베시마 나오시게, 시마즈 요시히로, 고바야카와, 모리가문 정도로 볼 수 있다.
선박수는 2,000 ~ 3,000으로 당시 세계적으로도 굉장한 군사능력이었다.
해당 병력과 함선을 구축할 동안 조선의 정보력은 전쟁 발발 당시까지도
일본은 조선에 비하면 능력이 크지 않다고 평가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침략전에 조선통신사를 통해 일본 본토를 방문했고,
방문하면서 영토와, 인구와 시설들이 조선만큼 강성했다고 봤을 텐데..
왜 약소하게 평가됐는지는 알 수 없다.
당시 최강국인 오스만제국, 무굴제국(티무르), 명, 스페인과 포르투갈
해당 열강국가들의 수입은 조세뿐 아니라 매우 높다.
일본의 중심국인 오다(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의 수입도 적지 않으며,
동남아시아의 강국 타웅우 왕국보다도 많다 (당시 타웅우 왕국은 동남아시아 대부 부를 통치)
당시 조선의 수입은 일본의 1/5 수준으로 나온다.
조선의 국력은 세계적으로 약소국인 아니었지만
일본은 당시 세계적 정세 속에서도 강국으로 꼽히는 나라였고,
그 나라의 통치자가 외부의 세계로 눈을 돌리고 처음으로 침략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그리고 조선은 홍건적의 침공 이후 북쪽에서 여진족과의 분쟁만 있었을 뿐
대대적인 전쟁을 치러본 적이 없었고,
무신보다는 성리학의 영향으로 문신이 득세하는 상태였다.
당시 추정 인구, 경제력만 보더라도
일본이 조선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조선은 인지하지 못했다.
정보력이 없기 때문에 준비를 잘하지 못했고,
전쟁 발발 한 달 만에 수도가 점령당하고, 국토 대부분이 유린당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역사이야기 >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이야기_임진왜란 초기 조선의 무력한 대응 (66) | 2024.07.03 |
---|---|
역사이야기_임진왜란이 시작된 배경② (조선, 일본 생산력) (57) | 2024.07.02 |
역사이야기_고구려는 왜 더 성장하지 못했나 (49) | 2024.06.16 |
역사이야기_우리의 전성기는 왜 50년도 유지 하지 못했을까? (28) | 2024.05.07 |
역사이야기_우리나라의 전성기 조선_세종시대에 세계적 위치는? (37) | 2024.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