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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한국사

역사이야기_임진왜란 초기 조선의 무력한 대응

by 넥벤져스1984 2024.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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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두 달 만에 평양성까지 함락됐다.
물론 일본군의 전략이 속전속공이기도 했고,
당시 조선에 대해서 파악하길 상비군이 부족하여
초기에 수도 한양을 점령하고, 조선의 왕을 사로잡기 위해
수도 한양까지 무조건적인 돌격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주요 전투 및, 의병장

 
일단 일본의 진격로를 살펴보면, 사전에 정찰을 많이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
부산에서 한성까지 진격함에 있어서 최단 루트로 진격했다.
당시에 조선의 도로망이 굉장히 제한 적이었고,
일본은 한양까지 약 15일 만에 진출한다. 
당시에 도하장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수송용 장비들도 존재하지 않았고
몽골군처럼 기마병도 아닌, 아시가루(족경) 보병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의 활약상, (신기전을 운용했고, 아녀자 포함 일심동체로 저항했다)

 
조선군은 임진왜란 초기에 왜 이렇게 무기력하게 무너졌을까?
 
① 조세 제도에 붕괴에 따른 방어체계 무너짐
 
훈구 세력이 득세하면서, 조선초기 토지를 중심으로 부여되던 조세제도가
인구수에 부여되는 조세제도로 변경되며, 지주층에 조세제도가 유리해졌고
이러한 이유로 지방 주주들은 더 재산을 모으기 쉽게 되었고,
자영농들은 지주들의 소작농으로 되거나, 숨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져
전체적으로 병역을 수행하는 인원이 줄어들게 됨으로써
조선은 방어체계가 붕괴되었다.
 
붕괴된 상태에서 상비군 유지는 사실상 불가능했고,
이 시기 왜구의 꾸준한 침략, 북방에서 니탕개의 난 등 여진족의 침략으로
지속적으로 약탈당하여, 병역을 수행해야 하는 평민의 수가 줄어들게 되었다.
 
② 제승방략의 한계
 
제승방략을 가장 쉽게 설명하면 예비군을 운영하여 전쟁을 치른다이다.
현대의 시대에서도 예비군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행정력이 소모된다.
우선 치장 장비들을 관리해야 하며, 예비군 동원령을 선포하기 위한 계획
동원명부 등 엄청난 행정력이 소모되는데 당시 조선에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그리고 상시병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예비병력으로만 전쟁을 치를 수가 없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재정으로는 상비군을 운영할 수가 없었고,
예비병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상비병력을 운영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실제로 초기에 병력을 모으기도 힘들었고,
모은 병력도 훈련이 되지 않아 전투다운 전투도 못하고 흩어졌다.
 
③ 방어용 성, 성벽이 없다.
 
당시 일본의 진격로 상에 제대로 된 성곽이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의 경우 지방 영주별로 지방을 다스려, 길목 중간중간에 성곽이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통일신라시대 이후 남쪽 지역에서 분할된 적이 없는
통일 국가였기 때문에 요새가 있으면 반란의 위험이 있어서인지
방어용 성벽은 없고, 모여서 삶의 터전이 되는 성곽밖에 없었다.
당시 수도였던 한성의 성곽만 보더라도, 방어용 성벽은 아니었다.
 

성벽이라고도 할 수 없는 조선의 성

 
④ 전쟁 지휘관의 부재
 
대규모의 전쟁을 치러 본 적이 없는 조선에는 전쟁 지휘관이 부족했다.
물론 전투 지휘관은 용맹스럽게 싸우고, 전투를 잘 못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동래성 전투에서 전사한 송상현, 부산진 전투의 정발 장군은 정말 열심히 싸웠다.
다만 전쟁에 있어서 소규모 부대 전투가 아닌, 
대규모 회전에서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실제 전투 경험이라고 해도 여진족 비을 상대로 한 소규모 전투였기 때문에
전투가 아닌 전쟁을 치를 지휘관이 부족했다.
이는 조선의 중국의 송나라와 비슷한 성리학의 나라가 되어
무신보다는 문신이 득세하여, 전투 지휘관도 문신들이 주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급 지휘관인 박홍, 원균, 이일, 신립장군은 무기력하게 패전했다.
 
⑤ 방심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 침략전에도 조선 침략의 의도를 충분히 드러냈다.
명나라를 공격한다는 명분도 있었지만, 1590년 모링가를 정복한 이후
무사세력들을 통하여 대륙 진출을 위해 꾸준히 준비했다.
이에 따라 조선은 황윤길, 김성일을 파견하여 염탐했지만
실제로 일본 수도까지 방문하여, 일본이 조선보다 크다는 것을 알았지만
중간에 성곽들과 병력들을 못 보지도 않았겠지만
그들은 전쟁 준비를 심각하게 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네 편 내 편 싸우고 있었다. 
동인과 서인. / 네가 1이면 나는 2다. / 갈라 치기.
우리나라의 현 상황고 너무나 유사하다. 
모든 것이 네 편 아니면 내편이고, 내편이 아니면 옳다 하더라도 반대한다.
 
당시 조선은 일본에 비해 약소국은 아니었지만
전쟁을 철저히 준비한 일본에 상대가 될 수 있는 나라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현대전에서도 상륙작전은 정말 힘든 작전이고,
그 강력하다는 몽골군도 일본 상륙에 실패했다.
하지만 조선의 심각한 결함으로, 일본은 그 어렵다는 상륙전을 해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는데.
과거의 실패에서 역사적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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