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제1군 고니시 유키나가와, 제2군 가토 기요마사를
경쟁시키므로 인해서 보다 더 빠른 진군을 할 수 있게 했다.
고니시 유키나가도 히고이고 지역의 영주였고, 가토 기요마사도 히고지역 영주였다.
① 임진왜란 일본 정벌 군 (제 2대)
* 총 병력수 : 22,800명 / 632,000석(추정)
* 가토 기야마사 10,000명 / 하고 / 250,000석(추정)
* 나베시마 나오시게 12,000명 / 히젠 / 360,000석 (추정)
* 사가라 나가쓰네 800명 / 히고 / 22,000석(추정)
제2군은 1군보다 더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집단이었다.
우선 주장인 가토기요마사도 도요토미 가문 내에서는 후쿠시마 마사노리정도를 제외하면
최강의 무장 중 한 명이었고,
나베시마 나오시게는 류조지 가문의 다이묘로 규슈지역에서는 최강자 중 한 명이었다.
영지 1 만석당 250명으로 계산할 때 1군과 더불어 영지에서 초과한 병력의 차출이었다.
1, 2군이 규슈지역 (히고, 히젠) 지역 다이묘가 동원된 것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규슈 정벌한 이후에 본인 세력으로 장악하고,
규슈의 맹주 시마즈, 류조지, 오토모 가문을 정벌하여 본인 휘하에 위치해 뒀음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영지 넓이만 보더라도 선봉장 고니시, 가토보다 류조지 가문이 더 넓다.
류조지 가문의 당주가 나이가 어려 중신인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가문의 병력을 이끌고 참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히젠 지역의 경우 류조지 가문이 통치하던 영지로 대략 30만 석 이상으로 추정된다.
군사적 명성도 나베시마 나오시게 가 더 뛰어났고, 일본 전국시대에서의 경험도 더 출중했다.
류조지 가문은 규슈 북부에서 오토모 가문과 지속적으로 전투가 있었고
류조지의 당주 류조지 다카노부 외에, 나베시마가 대부분 전투 건을 담당했기 때문에
가토 기요마사보다 더 높은 명성의 다이묘가 포함되었다.
물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통해 본인의 가신들의 명성을 올리고자 했고
각 군의 사령관급 다이묘를 자신의 신진세력 다이묘로 편성하였다.
물론 나베시나 나오시게의 경우 조선 출병 시 다이묘가 아니었고,
류조지 타카노부 사후 당주가 7세로 출병하기 부적합하여, 가문의 병사를 이끌고 출전했지만
나베시마 나오시게도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히데요시가 규슈 정벌한 이후 합류한 세력이기 때문에
온전한 충성심이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웠고, 나베시마 나오시게도
히데요시를 꿰뚤어보고, 히데요시에 붙어 시마지가를 정벌했기 때문에
총대장으로 나서기에는 부적합했고, 류조지가에서도 히데요시에게
뭔가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가문의 최고 중신과, 12000 병력을 파견한 것으로 보인다.
가토 기요마사가 대장으로 하여 파병된 2군은
고니시의 1군에 비해서 전투다운 전투가 많이 없었다.
한성으로 향하는 길에서 대부분의 전투는 고시니 군이 치렀고
한성 점령도 고시니 군이 먼저 입성하고, 이후 함경도 방면으로 진출한다.
함경도 영지도 207만 석으로 평가하고 있었어서 평안도의 고니시보다
30만 석이 더 많게 평가되어 있었다.
하지만 함경도 지역은 당시 조선에서도 반란이 가장 많고,
여진족과의 전투가 가장 많았던 호전적인 지역이었다.
임진강전투에서 도원수 김명원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나,
뭐 이건 승리라고 할 것도 없이 조선군의 스스로의 궤멸이어서
가토기요마사는 조선군을 더 형편없게 평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함경도에서는 국세필, 국경인 등 순왜인들과 내통하여 임해군을 사로잡고,
야인 여진 통치 지역까지 진출하나, 포위망이 형성되고, 전투에서 패배하여 후퇴하고
정문부에게 북관대첩에서 패배하여 한양으로 퇴각한다.
가토 기요마사는 조선 출병 이후 이렇다 할 전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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